토기, 실용과 예술(土器 : Pottery, Utility and Art)
토기는 음식을 조리하고 담는 생활도구이나 신석기인 이래의 인류의 예술작품이자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토기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그 형태와 기법을 달리하고 있고, 또한 토기는 사람의 뼈를 추려 넣은 무덤- 독널무덤(옹관묘)으로도 사용되었다.
신라토기와 가야토기의 차이점
신라토기와 가야토기의 차이점에 대한 내용입니다.
기형(器形) |
신라토기(新羅土器) |
가야토기(伽倻土器) |
호(壺) (항아리) |
- 목과 어깨의 접착부가 각을 이룬다.
- 태각(台脚)이 부착되는 경우가 많다.
- 무늬의 빗에 의한 물결무늬, 대칼에 의한 각종 기하학무늬 이외에 조그만한 토우를 붙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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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과 어깨는 곡선으로 연결된다.
- 태각(台脚)이 없고 따로 만들어진 기대(器臺)위에 얹혀진다.
- 무늬는 목둘레에 돌려진 물결무늬에 한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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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배(高杯) |
- 대체로 다리가 늘씬하고 직선적이며 다리아래의 구멍이 상하 엇갈리게 배치된다.
- 뚜껑의 꼭지는 단추처럼 된것과 구멍이 뚫린 것 두 가지가 있다.
- 그릇과 뚜껑의깊이가 대체로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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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리의 구멍은 좁고 길며 상하일렬로 배치된다.
- 뚜껑과 그릇은 모두 납작하며 다리는 곡선적이다.
- 뚜껑의 꼭지는 단추식으로 한정되며 무늬는 빗으로 누른 점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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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색토기잔(초기철기시대)
토기유병(고려시대)
토기 양이부 소호(土器 兩耳附 小壺)
입지름 12cm, 둘레 50cm, 높이 22cm, 백제토기
최초의 공예품, 토기는 문화의 시작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창조된 최초의 공예품인 토기는 문화의 시작을 의미한다. 토기는 다루기 어렵고 청자, 백자보다 볼품은 없지만, 학술적 가치는 어느 문화재보다 높다. 토기의 종류는 출토 문화의 연대를 가늠하게 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 작품은 언뜻 보면 자기로 착각될 만큼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기형이 주는 안정감, 질량감, 크지도 작지도 않은 손잡이가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다.
토기양이부(삼국시대)
토기유개합(삼국시대)
토기골호(통일신라)
토기정병
토기정병
빗살무늬 토기편, 동삼동(신석기시대)
정병
목이 긴 형태의 물병으로 물 가운데서도 가장 깨끗한 물을 넣는 병을 이른다.
정병에 넣는 정수는 또한 중생들의 고통과 목마름을 해소해 주는 감로수와도 서로 통하여 감로병 또는 보병, 군듸카라고도 한다.
정병은 본래 깨끗한 물을 담는 수병으로서 승려의 필수품인 18물의 하나인 것이, 차츰 부처님앞에 정수를 바치는 공양구로서 그 용도의 폭이 넓어지게 되었다. 불교의 정병은 인도에서 발생하여 불교와 함께 우리에게 전래된 것으로 부처님 앞에 물공양으로 바치는 불기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불보살이 가지는 것으로 구제자를 나타내는 하나의 방편이자 자비심을 표현하는 지물구실을 하기도 한다. 정병의 재료는 토기나 금,은등이 사용되기도 하지만 주로 청동과 도자기가 애용되어 왔으며, 특히 불교를 숭앙하던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부터는 필수 불구로서 대량으로 조성되었다.
양식적인 측면에서도 고려의 독창성을 불교의 융성과 더불어 불전공양에 있어서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청동제의 정병에서 새롭게 보이는 은입사기법은 밀랍주조법과 함께 청동기 전래이후 급속하게 발전한 고려시대 우수하였던 금속공예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